[매일경제] 자영업 위기 해결하려면 | 창업 교육·건전성 평가 정례화 필요 지자체 나서서 건물주 횡포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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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짜 2017.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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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자영업 강국으로 가는 길은 뭘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최후의 생계 수단으로 자영업에 내몰리는 ‘어쩌다 창업’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적극적인 창업 의지도, 전문성도 없는 이들이 자영업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는 탓에 그저 유행하는 업종에 몰려 공멸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퇴자나 청년들이 창업을 안 해도 되도록 일자리를 늘리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단 저성장 시대에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은 만큼 자영업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형 지원이 현실적인 차선책으로 꼽힌다. 창업 전에는 체계적인 이론, 현장 교육을 통해 ‘준비된 창업’을 유도하는 게 급선무다. 창업 후에는 재교육을 통한 매출 증대 또는 폐업 위험성 평가를 통한 출구전략 모색 등 지속적인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생애주기별 지원책 마련해야

▷교육 수료 시, 月매출 200만원 더 높아

창업 교육의 중요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경기개발연구원이 수행한 ‘경기도 자영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창업 전 교육이나 컨설팅을 받은 자영업자는 받지 않은 자영업자보다 월평균 매출이 각각 229만원, 310만원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개월 미만의 ‘준비되지 않은 창업’ 비중도 각각 17%포인트, 22.1%포인트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선 창업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지난 2015년 서울 지역 신생 업체는 17만여개였지만, 창업 전 서울시 자영업지원센터에서 교육받은 인원은 온라인 약 1만명, 오프라인 약 3000여명에 불과했다.

박여울 서울신용보증재단 사업기획팀 차장은 “자영업지원센터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창업 전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이론 지식이다. 그런데도 생업 활동에 바쁘고 교육을 귀찮게 여기는 인식 탓에 이틀간의 교육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창업 교육 콘텐츠가 부족해 교육을 외면하는 문제도 있다. 요즘은 시장 트렌드가 급변하는데 업종별로 세분화된 영역에서 최신 콘텐츠를 갖춘 창업 전문강사가 많지 않다. 이론 교육 외에 현장 교육을 해줄 수 있는 성공한 자영업자의 재능 기부도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도 “업종별 창업 리스크와 성공 요건에 대한 정부 주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창업 목적에 따른 지원 방식을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저 은퇴 후 생존을 위해 자영업 시장에 떠밀려온 ‘생계형 창업자’와 자신만의 아이템을 갖추고 뛰어드는 ‘혁신형 창업자’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달라야 한다는 것.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가지 수단으로 두 가지 목적을 추구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혁신형 창업자에겐 ‘창업 지원’이 필요하지만, 생계형 창업자라면 철저히 ‘실업 훈련’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실패가 ‘병가지상사’이듯 폐업도 창업만큼이나 흔히 일어난다. ‘창업 후 3년 내 폐업률 70%’라는 통계는 창업에서 성공하기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폐업을 대비한 정책은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고경수 폐업119 대표는 “폐업 사례를 접하며 가장 아쉬운 점은 폐업 결정이 너무 임박해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적자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사업 진로 재설정을 고민해봐야 하는데도 심리적으로 공황 상태다 보니 합리적 의사결정을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고 대표는 “업종 변경, 규모 축소, 폐업 등 3가지 방향을 두고 선택할 수 있게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건강검진처럼 자영업도 정기적으로 건전성을 평가하고 실패 사례도 공유하자. 지나치게 창업에만 쏠려 있는 정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폐업 단계에서 대응을 잘하면 손실을 3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비슷한 의견이다. “정부가 창업 지원을 많이 해주지만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창업 노하우나 자생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손쉽게 수천만원씩 대출받아 창업하니 사회적으로 과부하가 일어난다. 수요 대비 공급이 많고 부가가치가 낮은 음식·서비스업보다는 기술 창업 중심의 세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자영업 강국이 되기 위해선 과한 임차료 문제 해결이 필수다. 사진은 지자체가 개입해 과도한 임차료 상승을 막은 서울 용산구 해방촌 신흥시장(위)과 서울 성수동 수제화 거리(아래).
사진설명자영업 강국이 되기 위해선 과한 임차료 문제 해결이 필수다. 사진은 지자체가 개입해 과도한 임차료 상승을 막은 서울 용산구 해방촌 신흥시장(위)과 서울 성수동 수제화 거리(아래).
▶과도한 임차료 문제 해결 시급

▷‘6년간 임차료 동결’ 해방촌 모범사례

자영업자 생존을 위협하는 과도한 임차료 인상도 손봐야 한다. ‘갑을관계’가 뚜렷한 건물주와 임차인의 자율 협상에만 맡겨놔서는 문제 해결이 요원한 만큼, 지자체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지난해 11월 ‘6년간 임차료 동결(물가 상승률만큼만 인상)’에 합의한 서울 용산구 해방촌 신흥시장이 모범 사례로 꼽힌다.

용산동2가 일대 해방촌은 이태원 경리단길 상권 확장 영향으로 연평균 임대료 상승률이 최고 30%가 넘는 ‘젠트리피케이션’ 위험 상권이었다.

이에 서울시는 해방촌 도시재생사업 시행 전 신흥시장 건물주 44명과 임차 상인, 용산구가 참여하는 상생협의체를 구성하고 임차료 인상 자제를 촉구했다. 건물주들 반대에 부딪히자 서울시는 ‘도시재생사업 취소’라는 강수를 두며 건물주들을 압박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건물주들을 수십 차례 일대일로 찾아가 설득하는 양면 전술을 펼쳤다.

이에 대부분 건물주들이 임차료 인상을 자제하겠다고 돌아섰으나 일부 건물주는 끝까지 반대했다. 서울시는 이미 찬성한 건물주들과 지역 원로들에게 남은 건물주를 설득해달라 부탁했고, 이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건물주 44명 모두가 임차료 인상 자제에 동참키로 했다. 임차 상인들도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공사 소음과 분진·교통 불편 등을 최대한 감수, 협조키로 했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창업학 박사)는 “임차료는 인건비, 식자재비 인상과 함께 자영업자를 괴롭히는 대표적인 문제 요인이다. 이 중 지자체 단위에서 그나마 대응 가능한 게 임차료다. 해방촌 신흥시장은 지자체 주도하에 건물주와 임차 상인, 그리고 지역 공동체가 합심해서 임차료 문제를 해결한 좋은 선례”라며 “무엇보다 민관 소통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임차료 문제로 갈등 중인 다른 지역 상권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하다”고 말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 일대도 비근한 예다. 낡고 오래된 공장과 창고가 밀집한 이 곳은 커피숍과 맛집, 스타트업 기업이 들어서고 뚝섬 개발 호재까지 겹치면서 최근 투자 열기가 달아올랐다.

이에 성동구청은 2015년 9월 서울숲길·방송대길·상원길 일대를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하고 성동구와 건물주, 임차인들이 적정 수준 임대료를 유지하기로 협의하자는 내용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마련했다. 임대료를 연 9% 이상 올리지 않게 하고 뚝섬 주변에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매장 입점도 제한하는 게 골자다. 대신 건물주들에겐 리모델링 활성화 구역을 지정해 용적률 제한을 완화해주거나 세금 혜택을 주는 식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키로 했다.

강지연 성동구청 지속발전과 주무관은 “높은 임대료에 밀려 자영업자가 상권을 떠나면 결국 공실이 문제가 된다. 건물주들에게 상생의 취지를 설명했더니 차츰 공감하는 분위기다.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확산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노승욱·정다운·서은내·김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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